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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나주여행 여덟 번째 방문지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 구)나주역사

전라남도/나주 여행

by 'b' 2016. 8. 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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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20분 즈음이었다.

 

관람 시간이 오후 6시까지여서 직원분이 영상실의 영상을 꺼두었다고 하셨는데

 

영상은 안봐도 되니 따로 켜실필요 없다고 말씀드리고 관람을 시작했다.

 

 

 

 

 

 

방문객들이 작성한 포스트잇들이 한 쪽 벽에 걸려있었다.

 

 

 

나주의 역사를 먼저 소개하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일제강점기 36년에 대한 연표가 나와있었다.

 

 

 

 

 

 

 

 

 

나주 지역은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 중 하나였다.

 

아래 도표를 보면 일제에 의해 수탈을 얼마나 당했는지 알 수 있다.

 

 

의병들의 무기가 인상깊어서 찍어보았다.

 

저런 단촐한 칼을 가지고

 

일제와 맞설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따지고 보면 수십년 밖에 되지 않은 과거인데

 

그때의 사람들을 일제와 맞서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단발령에 의해 잘려진 상투들

 

 

 

아랫층으로 내려가면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두었다.

 

 

 

사진이 흔들렸지만

 

나주 학생들은 기차를 타고 광주에 있는 학교로 통학을 했다고 한다.

 

 

기차의 모습은 대략 이랬던것 같다.

 

일본인 학생들과 조선인 학생들이 같은 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지만

 

같은 열차 칸에 있지는 않았고,

 

설령 자리가 없어서 같은 칸에 있게 되면 서로 시비가 붙곤 했다고 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 역시

 

나주에서 광주로 통학하는 학생들 사이에 시비 때문이었다.

 

10월 30일 광주-나주간 통학열차 안에서 한일학생간의 충돌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인 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하는 것을 본 조선인 남학생이

 

분노하며 중학생으로서 할 행동이 아니라고 나무라자

 

조선학생 무리와 일본학생 무리간에 소동이 일어났고

 

기차역장이 나와 소동을 말리는 과정에서

 

조선인 학생만 크게 혼내고 통학권까지 빼앗은 것이

 

학생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바로 옆에는 나주역사가 있다.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바로 이곳이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이 다투었던 그 장소이다.

 

1913년 7월 1일,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신축된 건물이고

 

1970년에 보수가 되긴 했지만 기본 구조와 기둥 등의 목재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바닥에 써있는 글귀가 참 인상깊었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 중학생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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