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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교회 ㄱ자교회

전라북도/김제 여행

by 'b' 2016. 6. 1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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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90-1

 

금산사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내려와서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금산교회에 도착했다

 

휴일이어서 그런지 관광버스 2대가 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금산교회는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시골의 한적한 도로옆에 있었다.

 

국내 유일의 ㄱ자교회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 탓인지

 

금산교회 맞은편에 공터를 만들고 그 옆에 기념관도 있었다.

 

위 사진은 금산교회 맞은편 공터에서 파노라마사진을 찍은 것이다.

 

왼쪽에 보이는 것이 금산교회 기념관의 모습 맞은편에 보이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다.

 

ㄱ자교회(구교회)와 바로 옆에 새로운 교회가 같이 있었다.

 

새로운 교회라 할지라도 80~90년대에 세워진 것 같지만..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서 금산교회로 가까이 가니

 

구교회의 모습과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생각해보니 주변을 살피지 않고 2차선도로만 타고 달리면,

 

있는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법한 곳이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구교회와 신교회의 모습이 옹기종기 붙어있어서

 

어느것 하나도 멋드러진 태가 나지 않는 옹색한 모습이었다.

 

 

새로운 교회를 짓게 되면 기존의 교회를 허물고 터를 넓혀서 건축하는것이 보통일텐데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도 터를 넓히지 않고 건축한 모습이 인상깊었다.

 

 

 

 

 

 

담을 들어서면 한옥형태의 교회가 보인다.

 

한옥을 정말 오랫만에 보는것 같다.

 

백여년 전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했다.

 

 

담장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편에는 작은 종탑이 있었다.

 

마이크나 앰프시설이 없었을 당시에는 종을 쳐서 예배의 시작을 알렸을 것이다.

 

 

 

구 교회와 신 교회가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이다.

 

오른쪽 처마 끝을 기준으로하면 채 1~2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

 

 

 

 

 

정면으로 들어와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 이곳에 남자가 앉았을 것이고 측면으로 여자들이 앉았을것 같다.

 

이 곳을 실제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여기는 측면에서 들어온 모습이다.

 

아마도 여성들과 아이들이 자리를 했던 곳으로 보인다.

 

양쪽에 보이는 흰색 커튼은

 

교회가 가득 차서 사람들이 강단 바로 앞과 뒤까지 와 있을 때에

 

그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다만 궁금한 것은 설교자도 남자였을 텐데

 

커튼 사이로 설교자가 보이도록 했을지, 아니면 다 가리고 소리만 듣게 했을지..

 

이건 모르겠다.

 

 

강단 바로 옆,

 

그러니까 교회의 정면과 측면이 이어지는 곳에 사진 두 개가 걸려 있었다.

 

왼쪽에 조덕삼 장로와 오른쪽에 이자익 목사 사진이다.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의 이야기는 유명하고

 

오늘날에도 귀감이 될 수 있는 미담으로 전해진다.

 

 

당시 지방 유지였던 조덕삼 장로에게는 이자익이라는 마부가 있었는데

 

둘 다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 이자익은 조덕삼의 집에서 종으로 일을 하였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똑같이 성도로서 일을 했다고 한다.

 

 

후에 교회가 커지면서 장로를 선출을 하게 되는데

 

장로 후보자는 조덕삼과 이자익이었고

 

장로로 선출된 사람은 조덕삼이 아닌 이자익이었다.

 

 

놀랍게도 당시 양반이며 이자익의 주인이던 조덕삼은

 

두려워하는 이자익을 안심시키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장로로 선출된 이자익을 잘 섬기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평일에는 집에서 이자익의 주인이던 조덕삼이

 

주일에는 교회에서 이자익을 섬기게 된 것이다.

 

 

당시 시대는 민주주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계급 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보기 힘든 선거 결과에 깨끗이 인정하는 모습은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귀감이 될 것이다.

 

 

후에 이자익은 조덕삼의 후원을 받아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고

 

졸업을 하자 조덕삼이 장로로 있는 금산교회의 초대목회자로 추대받게 된다.

 

 

 

 

 

금산교회 측면 모습

 

왼쪽의 집은 현재 사택인것 같아서 찍지 않았다.

 

예쁜 정원과 하얀 진돗개가 있는 근사한 집이었다.

 

 

 

 

 

난 옆쪽으로 튀어나온 면을 유심히 봤다.

 

꺾인 측면의 경계선이 어떻게 저렇게 깔끔한지 정말 궁금했다.

 

처음에는 원래 있던 집을 개조해서 옆으로 증축한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 놀랍게도 티가 전혀 안나서 신기해 하고 있었는데,

 

교회에 나오는 성도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늘어나자

 

조덕삼 장로가 성별에 따라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ㄱ자 형태의 집을 새로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금산교회가 처음부터 ㄱ자로 지어졌다는 것을 이 팻말을 통해 알았다.

 

 

 

 

제비집 흔적이 보였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댁에 놀러가면 제비들이 집을 짓고

 

새끼들이 짹짹 울어대던 기억이 살짝 떠올랐다.

 

제비 본적이 언젠지 가물가물하다.

 

 

기념관에 있는 예배드리는 모습을 재현한 사진

 

 

 

기념관에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기독교의 전래내역, 각종 보도자료 등..

 

 

 

 

 

 

여기 나오는 조세형이라는 사람은 조덕삼 장로의 손자이고,

 

국회의원으로 3선 의원이었다고 한다.

 

 

정말 새롭고 독특한 기억을 갖게 된 금산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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